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재수 좋은 날 만들기

아침 출근에 8분에서 12분 정도가 걸린다.
도중에 횡단보도 하나를 건넌다.

횡단보도에 도착 하였을 때 파란불이 바로 켜 지면
기분이 좋다. 신호빨이 좋은 것이다.

이제는 저기 저기 멀리서부터 그 교차로의 신호등을 살핀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맞춰 조금 빨리 걷거나 조금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횡단보도에 도착하고, 파란불이 켜 지고
나는 기분이 좋은, 재수 좋은 날을 예감하며 길을 건너 출근을 마무리 한다.

우리 삶의 여러 일을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하고, 재수 좋게 끝나게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고, 조금 더 미리 행동하는것이 필요하다.

아는 사람만이 행동할수 있고
행동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다.

2013년 6월 22일 토요일

亢龍有悔

亢龍有悔
주역 건괘 상구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의 건괘는 다양한 곳에 비유되는데
인생의 과정을 다루며, 시기에 적절한 처신을 알려주고 있다고도 한다.

인생 60대 이후의 삶에 있어서의 교훈이랄수 있는 문구가
바로 항룡유회다.

여섯개의 효사다.

初九 潛龍 勿用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九四 或躍在淵 无咎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上九 亢龍 有悔

잠룡도 나오고 현룡도 나오고 비룡도 나오고 항룡도 나온다. 
용은 용인데 처해있는 상황이나 용 자체의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다. 

항룡은 건방진 용이다. 
과거의 화려함과 힘을 이미 잃었으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후회 이외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것이 어찌 인생의 늙음에만 비견되겠는가?
어떤 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필요한 경구(警句)이다. 

한 때 힘을 가졌었을 것이다.
계속 그러리라고 여기지 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룡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놓지 못하는 자들의 삶

나의 제 2의 고향인 익산에 가면 생각하곤 하는 것이 있다.
대학 초년생 무렵 활개치던 곳인 중심상권의 변해버린 모습을 바라다보게 되는 익산역 광장앞에서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다본다.
또 생각한다.
전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부분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플라톤의 경구를.

도시 외곽에 신 시가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여기에도 한 번 쯤은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기존의 기득권을 내어 놓지 않으면서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들, 기득권을 내어 놓더라도 변화를 추구하려던 사람들, 그냥저냥 빌붙어 사는 사람들, 변할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등등.
반대한 사람들은 반대하였기 때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 쇠락한 도시의 음울한 안개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
아마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이익을, 과거의 영화를, 권위를, 자존심을...

영화관과 현대적 상권이 들어선 신 시가지는 예전 스무살 시절 나의 눈에 비치던 중심상가의 모습처럼 활력이 넘쳐보인다..
세상의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

2013년 6월 15일 토요일

하는 것과 얻는 것

젊어서는 별 상관을 다 한다.
초보자는 별 생각을 다 한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거의 실패한다.
하나만이라도 얻으려는 사람은 거의 성공한다.

나이들면 너무 상관을 안한다.
숙련자는 너무 생각을 안한다.

실패해도 얻는 만큼 이익이다.
성공해도 얻는 것은 하나이다.


사소한 일

우리를 곤경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대부분 무척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볼펜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 정도를
사소한 일로 여기는 사람은 삶 자체가 곤경과 혼란일 것이며,

강도 9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 정도를
사소한 일로 여기는 사람은 삶이 평탄 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크기의 사건들을 만나고 저지르며
나이를 먹어간다.

시간 속에서 배워나가는 사람은
점차 평탄한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역동적인 삶을 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기호지세(騎虎之勢)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양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내려오면 호랑이에게 죽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그렇게 될지 몰랐던 사람들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
자신의 목줄을 죈다.

많은 변수들이 튀어나오고
계획은 누더기가 되었다가 사라진다.

작은 일에는 작은 책임이 따르고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청년 때의 일은 댓가가 큰 것이 많지 않고
장년 때의 일은 파급이 작은 것이 많지 않다.

미래를 살피는 혜안을 연마하고
타산지석의 교훈을 헤아리는 습관을 키워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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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잘하자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한가?

그래야 하는 때가 있고
그렇지 않아야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일이 있고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해졌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필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다.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기다림

빠르면 얻지 못하고
늦으면 다시 준비해야 한다.

그 순간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준비는 힘들고
시작은 두려우나
기다림은 즐겁다.

기다림에 익숙해지면
아예 시작하지 못하니 조심하자.

2013년 6월 9일 일요일

반응

내가 상대에게 겁을 먹고 다가가면
상대도 내게 겁을 먹고 응대한다.

평정심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것이 좋다.
뭔가를 꾀하는 사람은 평정심을 가지기 힘들다.

받고 싶은 만큼 베풀어야 하는 것인데
베푼 만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2013년 6월 8일 토요일

선택

우리는 선택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그 결과의 심대함에 비하여 너무나 가볍게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가 그런 것인줄 모르는 것이다.

결과가 드러나는 그 때 쯤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이 선택은 명백히 결과를 알 수 있다.

과거는 바꿀수가 없다.
과거의 선택으로 비롯된 현재의 결과를 받아들일지 고민해야 하는가?
미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과거를 위한 선택일 것이다.

하기 싫은 선택이 바른 선택이였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선택의 목표는 미래가 되어야 한다.



2013년 6월 7일 금요일

스승

공부 못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초등학교 1학년을 가르칠 수 있다.

공부 못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가르치는 학생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부족해서이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삶의 여정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한 때 가르켰던 자에게 가르킴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한 가지 일에 노력하여 스승이 된다 해도
다른 일에서는 제자가 되기도 한다.

작은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삶과 같이 큰 일에서도 그러하다.

한 번 시작한 스승질을
사람들은 쉽사리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배우려 하는 사람만이
종신토록 가르침을 베풀 수 있다.

人之患 在好爲人師 (인지환 재호위인사)


여자의 권력

시대나 지역에 따라 미추(美醜)의 기준은 다르지만
여자들에게 미(美)는 권력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권력은 화려한 앞과 추악한 뒤를 가진 존재이다.
무릇 미(美)를 휘두르는 여인들은 추악한 뒤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미의 추구나 권력의 추구는 모두 다
그만 둘 때 그만 두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3년 6월 4일 화요일

우리 앞에는 항상 벽이 있다.
궁금한 그 너머를 가로막고 있는 벽

나는 이미 그 벽 너머에 있는 그 무엇도 나를 온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그 다음을 감추고 있는 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삶은 유한하고
벽은 무한하다.

바로 눈 앞의 벽을 벽인 체로 둘 수 있는 사람.
진정 벽을 넘은 사람이리라.

2013년 6월 3일 월요일

산 너머 돌돌이

산 너머 너머 너머 너머 깊은 산골에 돌돌이가 살았다.
할아버지와 돌돌이는 약초를 캐고 화전을 일구며 살아갔다.

흰 쌀밥에 고기국을 자주 먹는 것과 두 산 너머에 있는 석순이와 결혼하는 것이 바램이라면 바램이였지만
할아버지와 오손도손 살아가는 산골 생활이 싫지는 않았다..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루느라 도시에 있던 머언 당숙이 오셨다.

장례가 끝나고 당숙의 권유로
두어달 서울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쌀밥과 화려한 여자들 속에서 두달을 보내고
산골로 돌아온 돌돌이

몇일의 산골 생활 뒤에 돌돌이는 짐을 꾸렸다.
그는 마치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담은 에덴에서 버림받았고
돌돌이는 산골을 버렸다.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만이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기쁠때 슬픔을 경계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