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5일 토요일

Loud-mouthed, incompetent people

There will be a time when loud-mouthed, incompetent people seem to be getting the best of you. When that happens, you only have to be patient and wait for them to self destruct. -RICHARD RYBOLT-
It never fails.
목소리만 크고 무능한 사람들에게 뒤지는 느낌이 들 때가 올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인내심을 갖고 그런 사람들이 자멸할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백전백승한다.
- 리처드 라이볼트 -

맞는 말이긴 하다. 재능만큼이나 무능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결국 뚫고 나오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남은 평생을 폐허 속에서 후회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상당한 일들이 원래에 가깝도록 회복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내가 포함된 어떤 공동체의 일들을 좌지우지하게 되어 공동체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린 다음에야 내가 옳았고 그들이 틀렸음이 증명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覆巢之下 豈有完卵
엎어진 새 둥지에 온전한 알이 있겠는가?

인내심을 갖고 자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일이 있으며,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 극복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헤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중대한 일에 가벼이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승부를 가리는 세상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의 제일 마지막 두 글자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애당초 비교하고 경쟁하는 자리에 끼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아울러 자신의 삶이나 운명을 자신이 포함된 어떤 공동체에 맡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여, 국가나 가족 등 불가피하게 속하게 된 공동체 이외의 것에는 가능하면 깊이 발을 담그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목소리를 키우기보다는 능력을 키울 일이다.


2017년 6월 8일 목요일

용기

진정 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고, 진정 알게 된 것을 실천까지 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관련된 질문들을 한다. 그것이 끝이다. 그의 목적은 질문을 했다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는 것이다.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는 안도감이나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운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운동을 하면 효과적으로 살을 빼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TV 속에도 많다.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는 것이 그들의 감춰진 목적이다. 실천으로 이어질리 없다.

고민에 대하여 상담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고민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을 얻고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고민에 대하여 고민하며 술과 음식 그리고 단 것으로부터 위안을 삼고,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똑같은 고민거리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주변 사람을 학대히는 일임을 본인만 모른다.

행복에 대한 것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방법을 찾지만 찾는 시늉만 한다. 사실 절대적인 불행과 절대적인 행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는 뭔가 불편이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손 안에 쥐어져 있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행복을 거머쥐려고만 하니 언제까지고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 결코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놓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행복에 가까운 그 어떤 행복을 잡을 기회라도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을 부여잡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그만큼 놓아야 할 것도 많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니버의 기도’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진정으로 알고 또한 실천하려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2017년 6월 2일 금요일

IoT & IoE

귀촌 주택을 짓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IoT에 대한 기술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IoT는 ‘Internet of Things’의 약자로 사물인터넷이라고 하고, 좀 더 확장된 개념인 IoE(Internet of Everything; 만물인터넷)라는 말도 있다.

예전에는 꽤 많은 자본과, 고급기술이 투입되어야 구현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 일상적인 일들로 다가오고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시간과 공간은 주요한 고려사항이었지만 이제는 중요성이 약화되었다. 물리적인 요소들이 점차 예전에 비해 중요성을 잃고 있다.

스마트 스위치, 스마트 콘센트, 스마트 보일러, 스마트 도어, IoT CCTV 등등이 당장에 손쉽게 구현 가능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밭에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킬 수도 있고, 필요한 곳에 불을 켜거나, 필요한 시간에 보일러를 작동하거나, 낮에 CCTV를 살펴보거나, 밤에 적외선 CCTV를 작동시키거나, 애완견 밥을 챙겨 주거나, 닭에게 사료를 주거나, 문을 닫거나 열 수 있다.

이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큰 효용을 가질 수 있다. 전원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안전문제인데, 이러한 기술들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기르는 가축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장기여행을 가기 힘들던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냉난방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으며, 다양한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영역에서 기대하는 것 이상의 수준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들 중 상당수는 그 혜택 덕분에 점차 더 게을러질 것이고, 상당수는 말 그대로 좀 더 스마트하게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해 내고 즐기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기술의 발전이 반갑다.

IoT 로봇 CCTV : 앱봇 라일리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머리카락 수염 넥타이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내게 되면 제일 먼저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일 터이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덥수룩하니 자란 수염을 만나게 될 것이고, 몇 주가 지나고 나면 머리가 길어 귀와 뒷목을 가리게 될 것이다.

타인과 접촉하며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를 해야 한다. 넥타이를 맨 단정한 옷차림, 깔끔한 면도, 머리카락 정돈.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예의라 여겨지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의식주 문제에서부터 교육, 쇼핑, 취미, 사교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시선과 견해를 너무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의식하지 않는 삶도 문제가 있는 삶이겠지만 마치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삶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삶에 지쳐가다 결국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들 중의 상당수는 정리되지 않은 수염과 긴 머리카락을 고수하며, 자유의 상징처럼 여긴다. 넥타이는 애시 당초에 멀어져가는 것이고.

수염이 제법 자라서, 매일 만져보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고, 머리카락도 이제 곧 표가 날 것이다. 그에 따라 남 보다는 내게 최적화된 나의 삶도 점차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거울을 보고 웃으면 입가의 수염이 따라 웃는다.


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진로(進路)

진로(進路)

아들 둘의 진로가 걱정이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기였던 시절에는 학업성적이 뛰어난 것이 성공과 행복을 확실히 보장해 주었다.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확실히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던 시절,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의 성공과 행복의 척도가 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말미에 살았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어쩌면 평생 써먹지도 않을 것들, 기억에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배우고 기억하며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들들이 불쌍했었다.
“너희들.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하지 않아도 한 가지만 포기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요즘 세상이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것만 포기하면 된다.”
아들 둘은 모두 내게 독신서약(?)을 했다.

공무원이 되려는 청춘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슬픈 일이다.
공무원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없다.
효율보다는 규칙규범을 따라야 한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관행에 따라야 한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꽉 막힌 정신의 소유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능력에 상관없이 먼저 공무원 된 사람의 부하직원이 되어야 한다. 꼴통 상급자를 만나면 정말 답이 없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을 나는 무척 많이 봤다. 메스컴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공무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자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은 그만두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어디 공무원사회 뿐이겠는 가마는 이직이 자유롭지 못하고, 퇴직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많은 공무원은 일반 직장인에 비하여 부담이 너무 크다.

하루의 대부분을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데, 다행이도 전문직이라서 돈을 좀 만지는 사람들. 소위 ‘고급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대가로 비싼 음식, 비싼 옷, 비싼 집, 비싼 차를 소비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과연 행복한지 의심스럽다. 한 번 그 길로 접어들게 되면 쉽사리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벗어난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저 계속 소비와 소유로 만족감을 찾으며 더 이상 소비하고 소유할 수 없을 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열 시간 가까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목과 어깨와 허리가 아파오고, 체중이 늘며, 여러 가지 질환으로 고통 받으며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한다. 본인과 가족이 늘상 해오던 그런 소비를 겨우 감당하며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중얼대면서.

‘자전거 인생’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얼마가지 않아서 넘어지고야 마는 자전거 인생들. 페달에서 발을 떼서 땅을 딛고 설 수는 없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쓰러지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긱 이코노미>라는 책을 읽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긱 이코노미는 1920년대 미국 재즈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필요에 따라 섭외해 단기 공연을 진행했던 '긱(gig)'에서 유래한 용어로 그때그때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와 주로 비정규직·임시직을 늘려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염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매경 시사용어사전>

인공지능기술과 로봇기술의 쓰나미가 범지구적으로 밀려들고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듯한 분위기다. 미래는 더욱 예측불가능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그럴싸했던 사조(思潮)의 결과로 잘 사는 나라는 더욱 더 잘 살게 되었고, 그 나라에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었으나, 못사는 나라는 더욱 못살게 되었고, 그 나라에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점차 더 굳건해지고 있다.

메스미디어와 인터넷과 디지털혁명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에 정신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좀비 아닌 좀비들이 가득 찬 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많이 벌어서 풍족하게 쓰고 산다는 개념은 이제 접어야 한다.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을 배워야 한다. 소유 보다는 공유해야 하는 시대이고, 소비하기 보다는 경험해야 하는 시대이다.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갈증 속에서 고통 받다 죽어갈 것이다. 물질적 소비나 소유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체력이 있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진정 소중한 여러 가지 것들이 그러하듯이 건강과 체력도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우고 보전해 나가야 한다. 책을 읽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글을 써 정리하고, 생각에 잠겨야 한다.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인간적인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노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 갖춰나가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 무엇일까?” 혹은 “미래에 각광받을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직업을 갖기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할 태세이다. 그런 직업을 갖고서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직업을 가져서 얻어지는 수입으로 소비하고 소유하고 향유하고픈 것일까? 그런 직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책을 읽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생각에 잠겨야 할 때이다.


2016년 5월 31일 화요일

허세

부쩍 타인들의 모습에서 허세를 많이 느낀다.

허세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하여 본질을 왜곡시키는 일체의 행위이다. 무의식적으로까지 허세를 부리는 지경은 정신착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이기 떄문이다. 종국에는 자아를 완전히 상실한 좀비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는 진정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허세도 어느정도 까지는 긍정적인 것이다. 사춘기를 지날때까지는 생존을 비롯한 여러 이유들이 허세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본질에 직면하여 살아가야하는 때가 되면 허세는 본질의 발전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요소가 된다.

본질에 직면하여야만 스스로를 용납할 수 있고, 본질의 발전을 위해 노력 할 수 있다. 본질의 발전은 인격완성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아의 개인적 실현을 구현한다. 지극한 안정과 평안이 삶의 전반에 걸쳐 실현되는데, 바로 진정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인들의 허세가 어색하고 안스럽게 느껴지고, 나의 허세에는 참담함을 느낀다. 자신을 혼자 두는 것,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고독한 여럿을 만나게 될 것이고, 고독하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3월 6일 일요일

먼저 경험한 자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키는 경우가 있다.
대학 신입생들이 아르바이트로 고교생을 가르키는 경우가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훈육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가르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러한 때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가르키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조금 일찍 배웠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가르키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을 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못하냐고 하면서, 혹은 멍청해서 빨리 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인듯한  착각에 빠진다.

매우 주의하여야 한다.
나 역시도 배우는 사람이고, 배우고 있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먼저 이 길에 접어들었을 뿐이며, 그래서 조금 더 경험이 많을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은 생각하여야 한다.
나를 가르키는 사람이 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나보다 조금 일찍,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일뿐이며, 어느순간 내가 투자한 것이 그보다 많아진다면 그는 내게 배워야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간혹 천제가 있기는 하다.
우리가 죽음 뒤의 일에 대하여 궁금해 할 필요가 없듯이, 천재의 경우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다가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 하는 것, 갈 수 없는 곳을 가려하는 것은 허망하다. 일단 알 수 있는 것을 다 알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다 간 다음에 그 너머를 생각해도 될 것이다.

알아야 할 것, 다다라야 할 경지가 세상천지에 수두록하다.
열심히 배우고, 그 모습을 통해 가르키면서 더불어 멋진 경지에 도달하면 참으로 즐거운 삶이 될 것이다.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2014 넋두리

세상사에는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다.
가정사에도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다.
개인사에도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다.

눈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그때그때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서 행동해야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법 원칙 상식 관습 규범 습관 등이 필요한 이유는
삶의 모든 순간을 그러한 고민과 잘못 속에서 날려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저런 것들이 잘못되거나 자주 바뀌면
세상사가 피곤해지고 가정사가 어지러지고 개인사가 없어진다.

개인에게 있어서 가치관을 만들고 유지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고,
가정에 있어서 가풍을 만들고 지키는 가장이 중요한 이유이며,
사회에 있어서 문화를 만들고 이끄는 지도층이 중요한 이유이며,
국가와 민족에 있어서 존속과 번영의 길로 인도하는 영도자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 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애공문왈: “하위즉민복? 공자대왈: “거직조저왕, 즉민복, 거왕조저직, 즉민불복.“
애공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올려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굽은 사람을 들어 올려 정직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비록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지만
올바른 일은 장려해야 하고 잘못된 일을 배척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는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고,
거짓말 하는 사람이 시시비비를 가리며,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며,
일단 위기만 모면하고 나면 뒷 책임을 지지 않고,
지나간 잘못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학습된다.

눈 코 귀 입을 닫아야 편안한 세상이 어디 요즘 세상뿐이였겠는가마는
요즘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상처받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부셔지고,
악한자들을 저주하느라 내 영혼이 악해진다.

사람사는 세상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14년 7월 26일 토요일

알 수 없는 미래


지금의 하루는 10년전의 하루가 아니며, 100년전의 하루는 더더욱 아니다.

10년 후의 하루는 어떤 하루일 것이며, 우리는 어떤 미래에 살게 될까?

고민하며 생각하고 배워보면 미래의 모습을 알게 될까?

과거 어느 순간에 우리는 미래를 꿈꿨으나, 그 미래의 모습이 지금과 다른 것을 본다.

지금의 모습이 과거에 상상했던 미래와는 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모습도 있다.

기쁨과 행복과 슬픔과 아픔을 주는 것들은 과거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혀서는 안된다.

지금의 행복한 모습이 행복한 추억이 되어 미래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오늘이 과거가 되고, 내일을 만들어 나간다.

직업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요즘의 아이들이 미래의 직업을 목표로 현재를 불행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행복한 과거가 있는 미래를 안겨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미래도 현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크리스마스 케이크


어제 퇴근을 하다가 퇴근하는 길목에 있는 빵집을 문득 바라보았는데,
평소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와 빵을 먹는 테이블과 의자 위에
케이크가 잔뜩 올려져 있었다.

아....
크리스마스로구나.

좋아 보인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이런 날을 챙기고 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물론 조금 더 개성 있게,
조금 더 자주,
몸과 맘이 온전히 편안한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이나마도 어딘가 싶다.

We cannot wish what we don't know!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꿈꾸지 못한다.

어디에서 본 속담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자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자유를 꿈 꿀 수 있겠는가?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데......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대화를 해서 많이 알아야 겠다. 
그래야 꿈꿀수 있을테니 말이다. 

개성이 충만한 나만의 삶을 꿈꿀 수 있을테니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행복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